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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by Evelina 2007.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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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야구 시합에서 나는 센터를 지켰는데, 3회에 뇌진탕을 일으켰다. 물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뇌진탕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근처 고등학교 운동장의 한 구석에서 그 시합을
했던 것이 그날 내가 뇌진탕을 일으키게 된 주된 이유였다.

나는 센터를 넘어서 날아가는 야구공을 전속력으로 쫓아가다가, 농구 골대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혔던 것이다.

눈을 뜬건 포도 덩쿨 아래의 벤치에 서였다. 벌써 날은 저물어 가고, 바싹 마른 운동장에
뿌려진 물 냄새와, 베개 대신 베고 있던 새 글러브의 가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양쪽 머리에 통증이 왔다.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무슨 말인가를 지껄인 것 같다. 내 곁을 지키고 있던 한 친구가, 나
중에 주저하면서 그걸 알려주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마 꿈이라도 꾸었었나 보다. 어쩌면 그 꿈은
급식 빵을 운반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곤 그런
말에서 연상되는 정경이라고는 달리 생각나는 게 없으니까.

나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때때로 그 말을 머리 속에서 굴려 보곤 한다.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그 말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나는 나라는 인간의 존재와 나라는 인간이 더듬어 가지 않으
면 안 될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가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하나의
지점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몹시 막막한 작업이다. 죽음은 어쩐
지 나에게 중국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중국행 화물선 中에서 -


난 하루키의 문체를 좋아한다. 왠지 드라마틱 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꼭 끝까지 잡는 어휘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도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말을 갑자기 툭 내 던진적이
있다며 자신과 작품 속에서 뭔가 동일한 끈을 찾곤 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속에서 가장 맘에 든건,
"나는 나라는 인간의 존재와 나라는 인간이 더듬어 가지 않으
면 안 될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라는 구절이다..
나는 누구일까......지금 이 문구가 나에게 가장 와 닿는 것도
어쩌면 한심한 내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나에게
살짝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직 한참 내 자신을 돌보고 더듬어 가야할 것이 많으니까.....

오늘은 그 길을 맘속에, 아니 머리 속에 한번 그려본다...


작성일: 2003.11.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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