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 Cause vs. Basket Case ::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2007.08.09 09:50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그 야구 시합에서 나는 센터를 지켰는데, 3회에 뇌진탕을 일으켰다. 물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뇌진탕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근처 고등학교 운동장의 한 구석에서 그 시합을
했던 것이 그날 내가 뇌진탕을 일으키게 된 주된 이유였다.

나는 센터를 넘어서 날아가는 야구공을 전속력으로 쫓아가다가, 농구 골대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혔던 것이다.

눈을 뜬건 포도 덩쿨 아래의 벤치에 서였다. 벌써 날은 저물어 가고, 바싹 마른 운동장에
뿌려진 물 냄새와, 베개 대신 베고 있던 새 글러브의 가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양쪽 머리에 통증이 왔다.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무슨 말인가를 지껄인 것 같다. 내 곁을 지키고 있던 한 친구가, 나
중에 주저하면서 그걸 알려주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마 꿈이라도 꾸었었나 보다. 어쩌면 그 꿈은
급식 빵을 운반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곤 그런
말에서 연상되는 정경이라고는 달리 생각나는 게 없으니까.

나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때때로 그 말을 머리 속에서 굴려 보곤 한다.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그 말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나는 나라는 인간의 존재와 나라는 인간이 더듬어 가지 않으
면 안 될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가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하나의
지점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몹시 막막한 작업이다. 죽음은 어쩐
지 나에게 중국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중국행 화물선 中에서 -


난 하루키의 문체를 좋아한다. 왠지 드라마틱 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꼭 끝까지 잡는 어휘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도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말을 갑자기 툭 내 던진적이
있다며 자신과 작품 속에서 뭔가 동일한 끈을 찾곤 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속에서 가장 맘에 든건,
"나는 나라는 인간의 존재와 나라는 인간이 더듬어 가지 않으
면 안 될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라는 구절이다..
나는 누구일까......지금 이 문구가 나에게 가장 와 닿는 것도
어쩌면 한심한 내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나에게
살짝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직 한참 내 자신을 돌보고 더듬어 가야할 것이 많으니까.....

오늘은 그 길을 맘속에, 아니 머리 속에 한번 그려본다...


작성일: 2003.11.17 15:11 

  • 하루키 좋아해요.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그 글도 좋은데.. 그쵸?
    맨 처음 읽었던 책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고, '노르웨이의 숲'이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맞나요?)'은 그다지 재밌지 않았지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양을 둘러싼 모험' 등은 너무너무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얼마 전에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원서로 샀는데, 도대체 언제나 읽을 수 있을런지... 에휴..

  • 저도 하루키 매니아..훗

    • BlogIcon Evelina 2007.08.09 21:47 신고 EDIT/DEL

      한참전에 빠져서 읽은 적이 있었었는데, 요즘은 통 소설 읽은 지 오래된 것 같아요.

  • 중국행 화물선... 저도 읽어본 작품이네요. 저는 하루키 작품을 오랜 시간간격을 두고 읽어놔서.. 쉽사리 뭔가가 잡히지 않는군요^^

    • BlogIcon Evelina 2007.08.12 23:49 신고 EDIT/DEL

      저도...읽다보면 작품들이 섞여서 기억이 나버려서 곤란해져버려요.

  • 너의 위치를 방문한 즐기는!